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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수필

이름을 남기고자 하면 제자를 키워라

by multidamdc 2024. 3. 19.

동서고금의 으뜸가는 네 분의 성인은 대체로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를 말한다. 어떤 말이든 좋은 의미를 인용하고자 하면 이 분들의 이름으로 최종 귀결이 되기에 그래서 성인이라고 불리는구나 인정하게 된다. 성인이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원래 서양에서 성인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 존경을 받았고, 그들의 가르침은 서양 문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동양에서 성인이라는 개념은 유교, 불교, 도교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형성되었다. 공자, 석가모니, 노자가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인물들로 존경을 받았으며, 그들의 가르침은 동양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그 이후 많은 학자나 철학자들이 그들의 조합을 가지고 성인들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알려진다.

 

기본적으로 4대 성인이라는 말의 기원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본의 이노우에 엔료 (1858-1919)라는 불교 사상가가 1885년에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칸트를 가리켜 4대 성인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선택에는 예수가 없고 칸트가 있었다, 이후 우치무라 간조(1865-1945)가 1908년에 발표한 '대표적 일본인'이라는 책에서 칸트를 예수로 교체하여 4대 성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와츠지 테츠로(1889-1960)라는 윤리 사상가가 책을 쓰면서 현재의 4대 성인이라는 개념을 널리 퍼트렸다고 한다.

 

독일의 실존주의자 칼 야스퍼스(1883-1969)가 발표한 '위대한 사상가들'에서 위의 조합을 소개하여 그의 소개가 4대 성인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저서가 1947년에 집필된 것을 보면 아마도 어느 정도는 전쟁시기에 일본과 독일의 사상적 교류를 통해 이런 개념이 일본에서 넘어왔을 가능성 높다. 야스퍼스가 선정한 4대 성인들의 설명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예수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가르친 기독교 창시자,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제하는 길을 제시한 불교의 창시자, 공자는 인간관계와 사회 질서에 대한 윤리적 가르침을 남긴 유교의 창시자로 묘사하고 있다.

 

4대 성인들의 가정사를 보면 흥미롭다. 예수 (B.C 4 - A.D 33 추정)는 요셉이라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마리아이다. 형제 자매들이 있었고 정식 교육을 받은 기록, 결혼한 기록은 없다. 그리고 30세 이전의 행적은 소설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리고 3년간의 공생활동을 하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였고 로마 정부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한다. 그리고 부활을 주장한다.

 

석가모니(B.C 563-B.C 483 추정)는 슈도다나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 이름은 시다르타이다. 어머니 마야는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야쇼다라와 결혼을 했고, 아들 라훌라를 둔 기록이 있다. 29세에 궁궐을 떠나 6년간의 고행으로 35세에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45년 동안 교화 활동을 했다. 80세로 열반에 들었다.

 

공자(B.C 551-B.C 479 추정)는 서자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무렵에는 이미 몰락한 소귀족 가문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공자를 어려운 환경에서 키웠다고 한다. 공자는 약 19살 때 결혼을 했으며, 그의 부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남아 있지 않는다. 그는 아들 공리를 두었다. 여러 나라에서 정치활동을 했지만 그의 정치적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자를 가르치는데 집중했다. 72세의 나이로 노령과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소크라테스(B.C 469-B.C 399 추정)는 아버지가 조각가, 어머니는 산파로 알려져 있다. 가난하지 않았지만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세 명의 형제가 있었고 아테네의 일반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소피스트들의 교육을 받기도 한 기록이 있다. 크산티페와 결혼을 하였고 세 아들을 두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2가지 죄목으로 독약을 마시고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는 자신들이 기록하여 남긴 것은 하나도 없다. 예수의 업적과 말씀은 사도 바울과 12제자들이 주로 성경의 이름으로 기록하여 남겼다. 기록한 시기는 대락적으로 서기 65년에서 100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후에는 예수의 직접적인 제자들은 물론, 제자들의 제자들까지 여러 사람이 성경의 저자로 참여하였다. 구약과 신약을 집대성한 시대적 배경은 4세기 초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시작되었다. 서기 397년 히포 공의회 개최를 통해 구약 39권, 신약 27권 정경을 확립시켰다. 이때 선택되지 않은 예수 제자들의 많은 문헌들이 바티칸 궁전의 서고 창고에서 썩고 있다는 설도 있다.

 

석가모니도 직접 경전을 남기지 않았으며, 그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들이 직접 듣고 기억한 것을 바탕으로 전해졌다. 초기 불교 경전은 주로 구전으로 전해졌으며, 후에 경문으로 정리되었다. 불교 경전을 주로 기록한 제자는 3명이다. 아난다는 석가모니의 사촌이자 가장 친밀한 제자였으며, 그의 말씀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전파했다. 우파리는 석가모니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율장가였으며, 율장을 기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마하가섭이며, 그는 석가모니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함경의 일부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는 그의 아들 공리가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문십철이라는 가장 뛰어난 10명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과 업적을 기록하고 전파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했다. 안회는 공문십철 중 가장 뛰어난 학식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논어'를 편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자공은 공문십철 중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도 역시 '논어'를 편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그의 업적과 말씀이 기록되었다. 스크라테스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플라톤이 그의 대화 형식의 철학을 기록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공화국'이 있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회상록'을 남겼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자신의 철학체계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토대로 삼는다고 언급한다.

 

성인들의 생애를 보면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자식을 잘 두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잘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마치 조훈현 선생님의 제자 이창호 사범님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어떤 것 무언가의 대가가 되어서 최소한의 제자 한 명을 두어야 하는데 신이 나에게 허락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