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논쟁은 정확한 답이 없을 때가 많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판단하기에 자기의 주관적 입장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의견이 다르면 주먹질까지 하는 경우도 본다. 특히 어떤 정치적 대립이나 흑백논리에 있어서 많은 논쟁을 보는 것은 일상생활화되었다. 논쟁에 대한 조금의 해결점을 얻기 위해 우리는 철학적으로 설명했던 마이클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를 떠올린다.
이 글에서 아주 사소한 논쟁 꺼리를 하나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꽃을 선물하면 주는 사람이 행복할까? 받는 사람이 행복할까?'라는 논쟁이다. 물론 꽃을 선물할 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지에 대한 논쟁은 주관적인 행복의 관점과 어떤 행동의 동기에 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내가 만약에 어떤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준다면 받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꽃을 준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내 자신도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아니면 최대한의 노력으로 준비하는 의지가 있기에 주는 것에 대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가끔 유튜브에서 낯선 남성이 지나가는 여성에게 꽃을 건네주는 장면들을 많이 본다. 이런 경우는 주는 남성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여성은 어느 정도 당혹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의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 꽃을 주고받을 때의 상황에서 '주는 사람이 행복할까? 아니면 받는 사람이 행복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또 이 문제에 관해서 여러 명의 철학자들의 생각을 한번 알아보고 싶다.
꽃을 선물하는 행위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에게 물어보자. 그는 이 질문에 대하여 윤리학의 핵심 원칙인 '순수한 동기'와 '의무감'을 중심으로 대답을 모색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는 도덕적 가치는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 행동이 수행된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규정하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만들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보다는 행위의 동기와 의도에 촛점을 맞춰 양쪽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행위가 순수한 의도로 수행되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양자의 행복은 도덕적 행위의 결과로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자체가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똑같은 질문을 20세기 후반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에게 물어보자. 그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질문 자체를 재고하게 만들 것이다. 그의 철학적 범주는 이분법을 해체하는 독특한 경향성의 사상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것을 선택할 때 발생하는 관계와 상호작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조적인 에너지와 욕망의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단순히 꽃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한가에 대한 이분법적인 질문보다는 이러한 행위가 어떻게 관계, 욕망, 그리고 창조적인 가능성을 생성하는지에 대하여 탐구할 사항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관계의 상호작용과 연결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한번 똑같은 질문을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물어보자. 그는 꽃을 선물하는 행위는 주는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와 창조적 힘을 행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가 말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예술가'가 되는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행위를 통해 주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고 형성하는 데 있어 주체적인 역할을 한다고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깊은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면 받는 사람 역시 이 행위를 통해 인간관계 속에서의 자신의 가치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관계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인정과 가치 부여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으며,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개인의 자아가 강화되고 발전된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깊은 의미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복잡한 인간 행위의 한 예시라고 주장할 것이다.
보는 바와 같이 위의 철학자들은 이분법적인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보며, 경향성을 따르고, 동기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행위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물론 같은 질문을 일반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다양한 의견과 논쟁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이다. 우리 생활속에서는 아마도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기던지, 돈 많은 놈이 이기던지, 아니면 주먹이 센 놈이 이기던지, 아니면 절대다수의 최대행복의 원칙대로 다수결로 결정하던지 할 듯싶다. 아니면 엉뚱한 데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이런 질문을 듣고 지나가던 사람이 "아니 바보들아! 그것도 몰라, 꽃을 판 사람이 제일 행복하지"라고 대답하면 그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생활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처녀 제 오셨네 (28) | 2024.03.29 |
---|---|
건강한 육체가 건전한 기억력을 불러온다 (1) | 2024.03.28 |
이제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13) | 2024.03.24 |
지피지기(知彼知己)면 이긴다. (22) | 2024.03.22 |
웃을 수 있는 순간만 있어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21) | 2024.03.21 |